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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년 10월 22일

10월22일 왕비는 일본에서 거행된 <EMI Music Tala 98(Autumn)> 에 출석하였다. 현장에는 백명이 넘는 홍콩기자와, 싱가폴과 대만 일본기자들,그리고 일본 음반업계종사자들 500명정도 등 6-700명이 모여들었다. 그외에도 EMI 본사와 일본, 홍콩의 고위층 까지 참석했으며, 왕비는 그 앞에서 국어곡 <감정생활>을 노래해 선사했다. 그리고 30분가량의 인터뷰를 했는데, 200개 넘는 매체에서 참석하였다. 이번 행사는 아주 성대하여 비용만도 홍콩돈으로 100만달러가 넘게 들었다.

행사의 시작부분에, 왕비는 음반회사의 주요인사와 술통경축의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힘을 너무 주는 바람에 술이 왕비와 옆에 있던 일본인에게까지 튀어 옷을 다 적시고 말았다. 왕비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으며 그리고 난처해하며 크게 웃어 버렸다. 다행히 현장에 있던 스태프가 즉시 수건을 가져와 몸을 닦게 하였다.

왕비의 어머니가 얼마전 돌아가신 일에 대해 그녀는 효심을 표시 하기 위하여, 소복을 입고 출연하였다. (검은색옷) 그리고 사전에 음반회사측에서는 기자들에게 왕비를 존중해주기 부탁하며, 그녀에게 개인적인 문제는 묻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앞부분에 홍콩기자들은 얌전하게명령에 따랐으나, 일본기자와 홍콩기자들의 흥미는 상통하는지,화제가 줄곧 왕비의 돌아가신 어머니와 어린 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왕비는 술통의식 후, <감정생활>을 부르고 나서 매체의 인터뷰를 하였다.

     


           

 

현장의 일본기자가 그녀에게 딸(정동)이 그녀의 새 앨범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냐고 묻자, 그녀는 웃으며 답하길 "저희 딸은아직 평가를 할 수 있을 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뮤직 비디오를 본적은 있는데,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어떤 기자는 왕비에게 묻기를 "[니快樂所以我快樂]은 딸에게 써주는 곡입니까? 그런 심정입니까?"라고 물었다. 왕비는 답하길, 이 곡은 딸에게 써주는 곡이 아니며, 한 곡을 써서 딸에 대한 그녀의 감정을 전하는 것은 그런 느낌을 형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쉽게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시간이 비교적 많이 걸렸다고 답했다.

"[童]이 곡은 딸에게 써주는 곡입니다. 딸에게 들려준 적이 있나요?" 왕비는 답하길, "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딸한테 써준 곡이라고 딸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딸은 빠른 곡을 좋아하기 때문에 매일 그녀에게 들려줘요. 딸은 매번 자기의 목소리가 나오는걸 들을때마다, 여러가지 표정을 짓습니다. 때로는 그 아이가 연기의 재능이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딸이 크면 연예인이 되게 할겁니까?" "만약 재능이 있다면요. 저는 막지않을거에요. 자기가 좋아만한다면요. 딸이 바라는 대로 하게 해야죠."

"어머니가 된후의 느낌은요?" "즐거울때도 있고, 힘들때도 있 습니다. 사실 모든 일에는 모두 정반되는 양면이 있습니다. 딸이 아직 크지 않아서 딸을 가르키는 고생은 아직 느끼지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는 좀 힘들 것이라는 것이지요. 왜냐면 비교적 고집이 세거든요."

"당신에게 어머니가 미친 영향은요?" 그녀는 반문하며 말하길, "어떤 방면의 영향이요?" 그러자 장내에 아무도 다시 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왕비는 이어서 말하길 " 모두들 다 아시다 시피, 저의 재능은 모두 어머니에게서 유전된 것입니다." 그외에 한 일본 매체에서 기묘한 질문을 하여 이 질문으로만 10분정도 지체되었다. 기자는 표시하길, 최근 한쌍의 모녀가 오룡차(우롱차) 광고를 하는 장면이 아주 포근하게 느껴져서, 왕비와 딸을 연상하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는 묻기를 왕비가 어째서 일본인들에게 환영을 받는가, 그 매력이 어디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이 묘해서, 현장에 있던 홍콩, 대만의 기자와 심지어 왕비까지 참지못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왕비는 웃으면서 답하길 " 아마도 현모양처의 모습이 아주 저랑 비슷한가부죠. 그래서 저도 일본인들의 환영을 받는가봅니다. 매력이 어디 있느냐에 대해서는....하하하....왜냐면 제가 현모양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말을 하자, 장내의 기자들은 모두 열렬히 박수를 쳤다.

 

"98년이 곧 지나가는데, 올해에 당신의 일과 가정에 대해 어떤 느낌이 있습니까?" 그녀는 말하길 "올해는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좋은일도 나쁜일도 있었지요"

"많지 않은 홍콩가수들이 일본에서 활동하게 되는데, 당신은 자랑스럽게 생각되십니까?" 그녀는 말하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건 잘 모르겠고, 그저 비교적 놀라울 뿐입니다. 비교적 익숙치 않은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은 놀랍지요. 왜냐면 안전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놀라고 나서야 비로소 자랑스럽게 생각되는

마음이 있겠죠?" 그녀는 일본팬들이 사랑을 해주는 것은 왕가위가 그녀에게 준 좋은 시작때문었다고 믿는다고. 이후에는 노래로써 그들을 매혹 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일본노래는 많이 듣지 않으며, 알고 있는 일본 가수는 山 口 百 惠 (야마구찌 모모에)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현재는 일본노래를 부를 생각이 없으며 또한 아무도 그녀에게 부르라고 청하지도 않았다고. 그러나 내년 3월에 무도관에서의 공연을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매니저에게 맡긴다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왕비는 동동이와 함께 일본에 와서 일과 회의를 하는 외에도 남는 시간에는 딸을 데리고 거리구경도 했으며, 그녀는 앞으로도 이틀 더 일본에 남아 잡지 인터뷰나 표지촬영, 방송 인터뷰등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후에는 홍콩으로 돌아왔다가 상하이로 가서 어머니와 관련된 뒷 정리를 하고, 10월 말에는 대만에가서 앨범 선전을 할 것이라고한다.

명보 기사에 약간 다른데서 본 기사들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대부분은 홍콩 명보 (明報) 기사에 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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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nslated by Jeon Ju-Hyoun